작성일 : 13-09-09 16:11
   
천승요-자료왕이라고들 하데?...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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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요-자료왕이라고들 하데?...

꽹과리 명인 이광수(왼쪽) 씨가 올해 초 ‘비나리’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천승요 씨. 사진 제공 인터넷 예술박물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예술방송국 아카이브 천’ 사무실에 빼곡히 보관돼 있는 전통 예술 비디오 자료 앞에 선 천승요 씨. 그는 “자료는 공개돼야 가치가 있다”며 30년간 촬영해 온 자료를 최근 인터넷에 공개했다. 전승훈 기자
전통 공연이 벌어지는 곳이면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천승요(55) 씨.
처음 그의 명함을 건네받고 깜짝 놀랐다. 종이가 아닌 미니 CD였기 때문이다. CD를 컴퓨터에 넣어 보니 ‘30년 만의 외도’라는 동영상이 뜬다. 꽹과리 명인 이광수 씨의 ‘비나리’의 신명 나는 장단에 맞춰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전통 춤사위와 산조, 탈춤, 굿 등…. 자신이 평생 찍어 온 전통 예술 공연을 빠른 비트에 맞춰 편집한 16분짜리 동영상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최근 그가 자신이 30년간 촬영해 왔던 자료를 인터넷(http://artsmuseum.org)에 공개했다. 직접 만든 동영상에 자신의 ‘비나리’(기원문)도 담았다.
 
전통 예술 촬영에 반평생 천승요 씨
 
“지금 저는 30년 만에 외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료는 공개돼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기록한 자료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76년 서울대 국악과 자료실에서 국악자료 수집을 시작한 그는 1979년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시청각 자료실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수집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 문예진흥원에 가니까 영국 BBC방송이 만든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상물 등 외국 공연자료 구입에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더라고요. 우리의 전통공연을 찍어서 영상물로 남기고 외국과 교류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1996년 문예진흥원을 퇴직할 때까지 그가 촬영한 공연은 모두 1만3000여 편에 이른다. 테이프만 해도 4000여 개 분량이다. 이 안에 한영숙(무용) 김숙자(무용) 김월하(여창가곡) 씨 등 고인이 된 전통예술 1세대들의 소리와 춤이 생생히 담겨 있다. 객관적 시각에서 공연 현장을 기록하는 촬영 방식 덕분에 그의 자료는 일본 와세다대의 민속학 자료와 교환되어 연구될 정도로 학계와 예술계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인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자료는 1980∼84년 전국을 돌며 찍은 ‘한국의 굿’ 시리즈. 함께 다녔던 사진작가 고(故) 김수남 씨의 ‘굿’ 사진집도 유명하지만, 천 씨의 비디오테이프엔 3∼7일간 계속되는 굿의 전모가 동영상으로 담겨 있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당시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무용학 석사를 받은 채희아 씨가 제게 찾아왔어요. 굿판에 대한 자료를 구하고 싶다고요. 김금화 씨의 ‘황해도 철무리굿’을 보여 주는데 첫 테이프를 다 보기도 전에 채 씨의 몸이 떨리더라고요. 그 뒤 채 씨는 김금화 씨를 찾아가 내림굿을 받았어요. 미국에 거주하는 채 씨는 아마도 최고의 학력을 가진 만신 무녀일 겁니다.”
자료 중에는 그가 통영에서 조각배를 타고 ‘통영 오구굿’을 찍다가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화면이 끊겨 버린 웃지 못할 장면도 담겨 있다. 그는 “몸은 빠졌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카메라는 배 위로 던져 필름을 구했다”고 말했다.
1996년 퇴직한 뒤에는 프리랜서로 기록작업을 계속해 왔다. 인터넷 박물관은 남은 퇴직금을 다 털어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는 오전 6∼9시에 접속자가 가장 많이 몰린다. 우리 문화에 목말라 있는 해외동포와 외국 누리꾼들의 호응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에 공개한 자료 500여 점. 2시간 짜리 공연을 인터넷에 올리려면 8∼10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혼자서 소장 자료를 모두 올리려면 죽을 때까지도 다 못할 작업이다. 그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은 안다”며 “나라에서 관심이 없으니 우선 시작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 기사 취재와 작성에는 박세미(서울대 인류학과 4년) 대학생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